오늘 리뷰해 볼 작품은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1984년 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입니다. 이 작품은 프라하의 봄이라는 1968년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을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이분법적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어요.
가벼울 것 같은데 무겁네 이런 거죠. 등장인물과 배경, 소재 모두 다 이 외연적 가치와 함축적 가치의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생각하면 할수록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마법 같은 작품입니다. 해석이 다양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늘 하던 대로 제 개인적인 해석으로 리뷰를 해보겠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리뷰
태클은 사절할게요. 오늘 할 얘기가 많은 관계로 작가 소개는 꼭 필요한 내용만 간단하게 할게요. 밀란쿤데라는 1929년 4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학 진학 후에 문학과 영화에 몰두를 해서 대학 졸업 후에 영화 아카데미에서 세계 문학을 가르치는 강사로 일을 했습니다.
작가는 반공산당 활동이라는 정치적인 이유로 공산당으로부터의 추방과 재입당을 반복 경험을 했어요. 1968년 체코의 프라하의 봄에 참여를 했고, 1975년에 프랑스로 망명을 해서 현재까지 작가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선 오늘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라하의 봄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로는 작품을 이해하기가 좀 버거울 수가 있어요. 프라하의 봄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 자유화 운동을 말합니다. 이 운동을 막기 위해서 소련이 군사적으로 개입한 사건까지 묶어서 체코 사태라고 부르는데요. 당시에 체코슬로바키아는 소련의 스탈린주의를 받아들인 노보트니 정권의 보수 정책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민주화 자유화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죠. 지식층을 중심으로 국민들이 뭉치기 시작을 했고요. 조직적으로 민주화 자유화를 위한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로 인해서 1968년도에 드디어 기존의 내각이 물러났고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민주화와 자유화 노선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는데요. 이러한 공산체제의 자유와 민주화로의 변화를 프라하의 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련이 가만히 있지 않았죠. 결국 소련은 무력으로 체코슬로바키아를 밀고 들어갑니다. 결국에는 자유화 운동은 저지를 당했고요. 민주화를 주도했던 이들이 숙청되고 말았죠. 바로 이 프라하의 봄이라고 불리는 사태에 작가 밀란 쿤데라가 참여를 했던 것이고요. 오늘의 작품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태어나게 됐어요.
서론이 길었네요. 이제 4명의 남녀를 통해 사랑과 삶, 그리고 체코의 역사를 빗댄 이야기의 줄거리를 알아볼게요.외과의사 토마 씨는 시골 마을로 진료를 나갔어요. 그런데 그곳 식당에서 테레자라는 여자를 만났죠.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토마시에게 뭔가 남다른 느낌적인 느낌을 받게 된 테레자.
곧이어 토마시는 마을 진료를 마치고 프라하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토마시를 따라서 프라하까지 온 테레자. 토마시는 이 운명의 이끌림으로 자신을 찾아온 테레자와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토마시는 지금 만나는 여자가 있어요. 바로 화가 사비나입니다. 토마시는 이미 결혼과 이혼을 경험을 했고요. 지금 교제하는 여성도 있고 동거하는 여성까지 생긴 그런 인물이에요.
영혼과 육체는 별개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쉽게 말해서 사랑과 섹스는 별개 그는 한 여자와 오랫동안 살 수 없는 여성 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유로운 성관계를 추구하고 있거든요. 토마시는 그동안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가벼움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죠.
하지만 이제부터 토마시의 인생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테레자로부터의 변화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사랑인 동시에 피곤함이 느껴지는 인생의 무거움이었습니다. 테레자는 이 토마시의 여성 편력이 싫어요. 그녀는 영혼과 육체는 하나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정반대죠. 그래서 늘 괴로워하며 지냅니다. 두 사람이 동거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애인 사비나 기분이 어땠을까요?
죽방을 날릴 만도 한데요. 웬걸요? 이해해 줍니다. 사비나는 이 토마시의 이러한 성격을 잘 알고 있어요. 이렇듯 그녀는 사랑에 있어서 가벼움을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토마시는 계속해서 힘들어하는 테레자를 보고 생각합니다. 그녀를 위로하고 싶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결혼을 합니다. 근데 소련군이 프라하로 밀고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어요. 위험합니다. 그래서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는 프라하를 버리고 스위스로 떠났어요.
근데 얼마 못 가서 테레자가 다시 프라하로 돌아갑니다. 어쩌겠어요? 토마시도 따라갔죠. 그렇지만 사비나는 그대로 스위스에 남습니다. 사비나는 그곳에서 프란치라는 유부남 대학 교수를 만났는데요. 이 프란치는 사비나에게 말했어요. 이 사랑에 대한 무거움을 지니고 있는 진진남 프란츠. 매력 뿜뿜 사비나랑 결혼하고 싶어요. 그래서 아내에게 이혼을 선언하고 사비나를 찾아왔습니다.
나랑 결혼하자 이 이혼을 선언하고 결혼을 요구하는 프란츠의 행동은 진지함과 무거움이 느껴지는데요. 사비나는 그런 거 싫답니다. 사랑에 있어서 가벼움을 추구하는 그녀는 자유롭기를 원하는데 프란치가 보여주는 이 사랑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거죠. 사비나는 결국 프란츠를 버리고 떠나버렸어요.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 화가로서의 삶을 이어갑니다.
아내를 버리고 사비나에게 버림받은 프란츠 닭 줬던 개 어쩐다 걱정 마세요. 결국 자기를 좋아하던 여대생과 동거를 시작해요. 쉽게 넘어지지 않네요. 그러면 토마시와 테레자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볼까요? 프라하로 돌아오니까 상황이 복잡합니다. 일은 해야 먹고 사니까 다시 의사 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꼬입니다.
토마시가 이 예전에 오이디푸스에 대한 이야기를 체코의 정치 현실에다가 빗대서 쓴 글을 신문에다 기고한 적이 있는데요. 결국 공산당을 비판하는 글이었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소련군이 프라에 자리를 잡고 빠샤 빠샤 하는 중이잖아요. 결국 의사 생활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창문 닦기가 되었어요.
힘들지만 열심히 창문을 닦으며 테레자와 알콩달콩 살았으면 좋겠죠. 근데 아니에요 그의 여성 편력은 여전했고요. 꾸준히 정말 성실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여성의 채취를 묻히고 다닙니다. 그런 거 싫다고 싫다고 괴로워하던 테레자 화나죠.
토마시는 테레자에게 섹스하고 사랑은 별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테레자도 실습을 해봐요. 그렇게 다른 남자의 욕정이 테레사의 육체를 덮어버린 순간 그녀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 혼란에 빠져버렸습니다.
텔레자은 순간적으로 희열 한 경험을 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치욕도 느꼈습니다. 이제 두 사람은 그냥 다 정리하고 시골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탁 트인 시골 풍경을 즐기면서 편안한 삶을 살다가 모두 교통사고로 죽어요. 인간의 삶은 한순간에 끝나는 영원하지 못한 가벼움뿐이던가요?
개인 견해
두 사람은 이렇게 삶을 마무리했고 사비나는 화가의 삶을 이어가고 프란츠는요 캄보디아 시위에 참여를 했는데요. 근데 그곳에서 강도를 만났고 그 일로 인해서 죽어요. 가볍다 여기까지가 오늘의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줄거리였습니다. 그 뭐랄까요? 그 느낌은 오는데 이거다라고 딱 선 긋기가 좀 어렵다고 그럴까요?
이 작품의 이분법적 구성으로 인해서 책을 한 번 읽고 바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게다가 이 시점 변화가 좀 잦아지고요. 술술 읽히지도 않아요. 이러한 이분법적 구성을 저는 가벼움과 무거움, 그리고 옳고 그름 이렇게 두 개의 테마로 잡아서 설명을 해볼게요.
배경은 프라하의 본즈 체코입니다. 이 유럽을 동유럽, 서유럽으로 나눠서 볼 때 보통 서유럽 국가들은 가벼움 다시 말해서 자유로움을 추구하고요. 동유럽 국가들은 무거움 다시 말해서 공산주의 이념 등 이런 무거운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두 가지가 아주 적절히 섞여 있는 나라가 바로 이 시기에 체코였어요. 이런 배경에서 사랑과 섹스는 별개라면서 성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토마시는 가벼움을 상징하고요. 영혼과 육체는 하나라고 말하는 테레자는 무거움을 상징하고 있죠. 하지만 토마시는 테레자와의 대립과 사랑으로 인해서 삶의 무거움을 보여주었고요. 또 공산당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탄압받는 모습을 통해서 또 한 번의 무거움을 보여줬습니다.
테레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벼움을 상징하는 외도를 경험했죠. 그럼 이번엔 사비나와 프란치를 생각해 볼게요. 사비나는 가벼움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어려서부터 억압을 경험하면서 자유를 추구하게 된 그녀 프란츠는 제가 줄거리에서 말씀드렸듯이 무거움을 상징하죠.
그렇다면 이 가벼움과 무거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정리하면 이해하기가 쉬울까요? 저는 식사와 간식 이 개념으로 한번 생각을 해봅니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식사는 꼭 해야 되죠. 하지만 간식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입니다.
작품에서 무거움은 식사하고 비교할 수 있어요. 꼭 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도덕률에 의해서든 관습에 의해서든 이데올로기에 의해서든 인간을 귀속합니다. 이 테레자의 섹스에 대한 생각이라든가 프란츠의 결혼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은 무거움이었잖아요. 반대로 가벼움은 마치 간식처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들입니다. 자유로움이죠. 억압받지 않을 자유, 마음 가는 대로 누구와도 섹스를 즐길 수 있는 자유, 가벼움과 무거움은 이렇게 둘로 나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당시 동유럽과 서유럽, 그리고 그 둘이 교차하는 체코를 배경으로 가벼움과 무거움이 대립하고 또 바뀌어가는 모습들을 그리면서 이념, 사상, 도덕률의 대립과 시대의 변화를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이제 옳고 그름으로 넘어가 보죠. 토마시는 자신의 신념과 생각에 따라서 옳은 일을 했습니다. 공산당에 대한 비난의 글을 써서 맞섰고, 또 탄압을 받아 유리창 닦기가 되기까지 하면서도 옳은 일을 했어요.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자유롭게 여성들과 섹스를 했죠. 그것 또한 자신에겐 옳은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테레자에게는 그 모든 것이 옳지 않은 일이 됐겠죠.
반면에 테레자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영혼과 육체의 일치를 주장을 했고, 토마시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옳은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토마시에게는 옳지 않은 일이었죠. 사비나는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프란츠를 배반하고 떠나는 옳은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프란츠에게는 옳지 않은 행동이었어요. 반대로 프란츠는 사비나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 아내와 이혼을 하는 옳은 일을 했지만 사비나에겐 옳지 못한 일이었어요.
그럼 이제 이분법적 구성을 정리해 보시죠. 결국 가벼움과 무거움, 옳고 그름, 이것들은 무엇 하나로 딱 정해질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공존과 대립은 곧 시대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꼭 밥을 안 먹어도 간식만 먹으면서 살 수 있죠. 하지만 이 반만이 가지는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환경은 변하고 있어요. 그에 따라서 인간의 삶도 변화하죠.
개인에 대한 억압이나 강요, 강제 등은 점점 줄어들고 자유가 허용되는 세상으로 변화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벼움들이 점점 늘어난다고 해서 모든 인간들이 행복해지기만 할까요? 이미 우리는 무거움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와봤기 때문에 무거움만 가득한 것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생각이나 행동은 모두 옳은 걸까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은 모두가 정답일까요?
내면과 외면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작품의 마지막인 토마시와 테레자의 죽음을 인간 존재 자체의 가벼움을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이 한순간에 휙 하고 날아가 버릴 인간의 삶이잖아요. 그렇게 무겁니다. 가볍니 옳다 그르다 살아왔지만 결국 도착하지 못하고 완성되지 못한 채 날아가 버리는 인간 존재의 가벼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작품은 해피엔딩일까요? 새드엔딩일까요? 이 위대한 작품은 우리에게 인간의 삶의 무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의 작품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리뷰였습니다.